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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8.16 그랑블루(2013. 7. 재개봉)
  2. 2013.08.12 인생(1994)
  3. 2013.08.12 가족의 탄생(2006)
  4. 2013.08.12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2003)
  5. 2013.08.12 공동경비구역 JSA (2000)
  6. 2013.08.12 혈의 누(2005)
  7. 2013.08.03 솔직히 말하자면..
  8. 2013.08.03 설국열차(2013. 8.)



  몇년동안 완전히 잊고있다가 재개봉 소식을 접하고 보러갔다. 그래서 내용을 거의 기억을 못하는 상태에서 봐서인지 장면들을 보며 내용전개를 뒤늦게 떠올려가면서 봤다. 아, 그랬었지. 이렇게. 몇번 본 영화치곤 생각보다 생경하게 본셈. 


  리마스터링 감독판이라서 50여분 정도가 추가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별로 이질감은 못 느끼는것으로 봐서 그렇게 원작의 큰 흐름에서 크게 벗어날 정도로 중요한 부분이 추가된 것 같진 않다. 언젠가 DVD 나오겠지 뭐.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엔조가 저 아래가 훨씬 좋다고 하는 말이나 주인공의 마지막 선택을 이해할 수 있는 부류의 인간이지만 쟈크처럼 위로 올라오기 위해 그 이유를 찾아내야만 하는 정도의 인간은 아닌듯 하다. 난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을정도로는 속되다.

고타마 싯다르타도 첫 아이가 태어나던 날 출가했다고 하지. 주인공의 선택도 그러하고. 남자에게 가정을 만든다는 건 여러가지를 의미한다. 결국은 세상에 뿌리내린다는 것.(보다 엄밀히는 세상의 '방식'에)


  그랑블루를 예전에 봤을때는 주인공이 감독을 상징한다고 봤었는데 다시보니 꼭 그렇지도 않더라. 엔조도 쟈크도 모두 감독 스스로를 드러내는듯.


  뤽 베송은 주인공이 결국 바다아래를 선택하는 이 영화를 내놓은 후에 마틸다가 죽은 레옹이 남긴 화분을 비로소 대지에 뿌리내리게하는 '레옹'을 찍는다. 그리고 그는 몇년후, '택시'를 찍기 시작한다. 학부 1학년 때 듣던 어느 기초교양수업에서 뤽베송의 궤적을, 어느 강사선생님은 이렇게 정리해주시더라.


(201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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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1994)

영화 2013. 8. 12. 18:18



  공산당 정권의 성립 이전에 나타나는 도덕은 가족이나 돈거래와 같은 사적 공간의 도덕이었다. 그 도덕은 국가로부터 직접 연원하지 않는 사적 부문의 자연적 공동체의 것이었다. 그러나 공산당 이후에 사적공간의 도덕은 공용식당에서 아들에 대한 반동이라는 비판이나, 주인공의 아들이 철이 더 있다고 말하는 것에 대한 칭찬(특히, 이것은 가족보다 공적 대의를 더 중시하는 태도였다.)에서 알 수 있듯이 점차 국가 공동체 차원의 공적인 것으로 그 성질이 변화한다. 사적 부문은 최소한으로 축소하고 공적 부문이 전분야를 전면적으로 총괄한다. 이러한 변화에서 공적 도덕의 전 부문에 대한 총괄적 지배는 결혼식이나 예술에서도 등장하는 마오의 초상에서 드러나듯이 마침내 완전해지는 듯이 보인다.(이에 비해 사적 예술인 그림자 놀이는 결국 불태워진다.)

  그러나 주인공들은 그러한 공적 부문의 확장 속에서 그에 대한 진심을 드러내지 않는다.(심지어 이것은 관객에게마저도 그러하다. 그들은 공적부문에 대한 속내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공적부문에 대한 그들의 반응은 살아남기 위한 허위적인 언행이다. 그들의 진심이 드러나고 삶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공적공간에서가 아니라 전면적인 공적공간의 포섭으로부터 끝까지 사적인 것으로 남아있는 가족이라는 공간에서이다.(도박 근절이라는 남자주인공의 변화와 부자가 되겠다는 목표는 가족을 매개로 한 것이다.) 공적 부문의 전면화 속에서도 주인공들의 삶을 지탱시켜주는 것은 가족이라는 사적 부문이라는 점에서 가시적 공적 영역은 매우 확대되어있으나 역설적이게도, 사람들은 그로부터 소외되어 있음이 드러난다.(이 소외는 공적부문에 투신했던 위원장과 지역책임자들이 결국 숙청의 대상으로서 조사받는 것에서도 나타난다. 결국 모두 공적 영역에서 소외되어 있다.) 이를 넘어서 공적 영역은 주인공들의 두 아이를 죽임으로써 사적 영역의 행복을 해치는 것으로서 나타나기까지 한다. 그리고 이 점에서 공적부문으로의 통일적 일원화 프로젝트는 실패하고 있다.

  이러한 희생을 겪은 주인공들은 결말 부분에서 가족을 기억하는 손자를 칭찬하고(이것은 이웃들의 아들에 대한 칭찬과는 다른, 가치의 전도를 보여준다.), 병아리를 그림자 놀이의 상자에서 키우는 것에서 도덕과 삶이 다시 변용-특히 가족적 가치에로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다.(이것은 중국의 90년대부터의 사적부문에 대한 재발견을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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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탄생(2006)

영화 2013. 8. 12. 18:14

가족과 혈연이라는 법적, 관습적인 경계를 넘어선 새로운 개념의 가족을 대안적 공동체로 제시하고 있다. 기존의 공동체는 (광의의)에로스의 경계가 뚜렷하게 정해져있다. 그러나 대안적인 공동체에서의 에로스는 그러한 경계에 얽매임이 없다. 가족이나 혈연의 에로스가 따로 존재하고 그것의 확장으로써 공동체가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족, 혈연의 에로스의 경계가 무화되고 에로스가 그와 무관하게 됨으로써(문소리가 엄태웅을 쫓아내는 결말은 가족의 개념에 혈연이라는 관습적인 경계는 새로운 대안적 공동체를 의미하는 새 개념의 가족의 탄생에 불필요한 것임을 드러낸다.) 에로스가 한정지워짐이 없이 보다 자연스럽게 널리 확장될 수 있게 된다. 어떠한 경계가 설정된 관계에만 에로스가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개방시키는 것이 새로운 공동체의 특징으로 제시되고 있다.(기존 사회의 가족, 혈연의 관습적인 개념은 오히려 에로스의 개방을 가로막는 걸림돌의 역할을 하고 있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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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이라는 철저히 공식적으로 성리학적인 사회의 외부가 보이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 볼 수 있다. 연경이나 저승으로 대표되는 '非조선', '비성리학적 사회'가 등장하는데, 그곳은 숙부인의 '그곳(저승)에서라면 우리가 부부라한들 뭐라 할 사람이 없겠지요.'라든가 연경으로 꼭 가고싶다는 말에서 잘 드러난다. 이들 '비조선'은 성리학적 도덕에 구애받지 않고 남녀간의 욕망대로 사랑을 이루어 살아갈 수 있는 공간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이미 조선 사회 내부에서도 '비조선'이 나타나고 있다. 조씨부인이나 조원의 태도에 드러나듯이 이제 더 이상 조선사회내 사람들은 성리학이 상정하는 도덕적 인간을 위한 자기수양에 힘쓰지 않으며 오히려 그러한 공식적 질서 하에서 나름대로 스스로의 더 본연적 욕망-이를 테면 사랑-에 더 충실한 삶을 살고자 한다. 이제 성리학적인 도덕이나 예법이 아닌 인간의 본연의 욕망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더 이상 사람들은 성리학적 도덕에는 관심이 없으며 오히려 욕망에 충실한 삶을 가장 좋은 삶으로 평가한다. 이제 사람들은 마음껏 욕정을 품고 마음껏 사랑하며 마음껏 질투한다. 그리고 숙부인의 말에서 드러나듯이 이러한 태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조선 사회 내에서의 비공식적인이고 은밀한 욕망의 삶을 누리는 것에서 이제는 이러한 욕망의 삶이 공식적으로도 용인되는 보다 더 자유로운 욕망이 가능한 공간으로서 저승과 연경을 꿈군다.(연경과 저승은 욕망이 충만한 하나의 이상적 사회로서 상정되는 것이다.) 이렇게 다른 사회-비조선을 꿈꾼다는 것 자체가 이미 충분히 조선이라는 정치공동체에 전복적인 움직임의 시작이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결말 부분에서 숙부인의 내세로의 선택과 조씨부인의 연경행을 암시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두 여자주인공은 이미 그러한 조선 밖의 사회를 선택하고 그곳을 지향하는 전복적 행위를 실천하는 단계로까지 나아가고 있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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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경필(송강호)는 두 가지 측면에서 살아남았다. 하나는 대치와 총격이라는 극단적 상황에서 살아남은 점이다. 이 사건 와중에서도 오경필은 네 명의 병사 중 극한상황에서 이데올로기에 포섭되어 행동하는 다른 세 명과 달리 끝까지 이데올로기로부터 분리된 태도를 취했다. 오경필은 오랜 외국에서의 경험을 통해 북한체제의 허실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고, 이는 미제와 초코파이를 특히 좋아하는 그의 태도에서도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그렇기에 그는 서로에게 총을 쏘는 식으로 이데올로기대로 행동하지 않았고 그 사태를 오히려 침착하고 대범하게 수습할 수 있었다. 그는 이데올로기를 이데올로기로서(허상으로서) 포착할 수 있었다.

또 하나의 측면은 그가 끝까지 이데올로기 체제에 자신이 그로부터 분리되어 있음을 들키지 않음으로서 살아남았다는 점이다. 이것은 네명의 우정을 들키지 않으려고 사태를 수습하려 가장 애쓰는 인물이 오경필이라는 점에서 나타난다. 그는 사건 뒤의 이수혁과의 대질에서도 사태수습을 위해 일부러 소동을 일으킨다. 그는 그러한 우정을 남북의 이데올로기 체제가 용납하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데올로기는 허상이지만,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신이 자유롭다는 사실이 공개적으로 드러날 경우 사회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그것이 가진 강력한 힘을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결국 오경필은 이데올로기를 잘 알고 있었기에 살아남은 것이다.(이수혁은 이데올로기를 어렴풋이는 의심하지만 결국 극한상황에서는 이데올로기대로 행동했다는 점에서 오경필과 대비되고, 그래서 죄책감에 자살을 택한다.) 그는 이데올로기의 허상을 알았기에 총을 쏘지 않았고, 이데올로기의 힘을 알고 있어서 사건을 조작하였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이수혁과 남성식을 탈출시키면서 사건 조작을 끝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이수혁과 남성식에 대해 배신감을 느끼지 않았다는 점에도 기인하는데, 이는 소피(이영애)와의 마지막 대화에서 자신도 이수혁과 같은 입장이었다면 마찬가지로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그는 극한상황에서 결국 작동하게 되는 다른 측면의 이데올로기의 힘 또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영화는 이데올로기의 강력한 힘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 강력한 이데올로기가 사실은 허상에 기인하고 있다는 아이러니한 점을 보여주고 있다.

(2007.)

2. 

허상을 두고 싸우는 것의 무용함을, 그 유해함을 깨달은 자들. 광장의 이명준과 이 영화의 소피의 아버지. 나는 이데올로기에 심취해 있는 이들에게 간혹 묻고 싶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것이 그토록 유의미한가? 그것이 자네의 삶에, 죽음에 맞닿아봐도 그러한가?

이 나라는 수백년 전의 세상과 별로 달라진게 없다. 쓸데없는 것으로 싸우고 논쟁하며 삶을, 죽음을 던진다.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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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의 누(2005)

영화 2013. 8. 12. 18:04



  섬은 뭍과 격리된 하나의 정치공동체로서 기능하고 있다. 그리고 이 섬이라는 정치공동체는 19세기 조선이라는 정치공동체를 상징한다. 19세기 조선 또한 간헐적인 교류를 제외하고는 섬과 같이 외부와 격리되어 있었다. 정조 사후에 이런 고립된 조선의 정치권력은 노론에 의해 독점되었는데, 이러한 반대항이 존재하지 않는 일원적인 지배는 그 체제 하에서 피지배자들의 불만을 사게 되었는바, 그러한 피지배자들의 불만을 가리기 위해, 체제를 위협하는 다른 위협적인, 그러나 관리할 수 있는 반대항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그 반대항은 고립된 조선의 현실에서는 그 내부에서 찾아낼 수 밖에 없었다.(이는 한국현대사에서의 '빨갱이' 담론이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반대항으로 설정된 것 중의 하나가 '서학'이었으며 영화에서 보여주듯 현체제를 위협하는 반대항으로서의 서학의 존재가 필요한 것이었을 뿐 '서학쟁이'로 설정된 자가 정말로 서학쟁이인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이를 통해 조선사회는 스스로의 체제유지를 위해 끝없이 희생양을 요구하고 있었음이 보여지고 있다.(정치체제 내 모순을 드러내려는 자는 오히려 광자로 묘사된다. 그러한 자는 그 체제 내에서는 '광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과연 '그가 광인인가, 아니면 그를 광인으로 취급하는 섬주민들이 광인인가?'라는 아이러니컬한 모습 또한 보여주는데, 이러한 광경은 영화의 결말 부분에서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조선사회는 무고한 자들을 희생시키면서 문제해결능력의 마비를 또한 보여준다.(그리고 관리할 수 없는 강력한 반대항이 나타났을 때 비로소 조선사회는 체제의 유지에 봉사하는 동요가아닌 진정한 의미의, 체제를 넘어서는 시도로서의 동요를 보이게 된다.)

한편, 상인계급의 성장은 조선사회의 또 하나의 동요 요소였는데 이들은 영화에서 묘사되듯 실질적으로 피지배계급을 장악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그러나 이 계급의 지배는 조선의 사회질서에서 용납되지 못하고 결국 제거된다. 결국 정치권력의 독점으로 인한 부패와 혼란은 가중되어간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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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2013. 8.)  (0) 2013.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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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자면, 진로를 고민중이다. 주변에 공식적으로 공언된 바와는 달리. 무얼 벌어먹으며 살까를 중점으로 삼을지, 혹은 다른 방향의 삶을 모색할지. 전자는 보다 명확하고 순탄해보이되 무언가 허무할까? 후자는 지고의 유의미성은 획득하겠으나 당장 힘들것이다. 그리고 후자의 경우, 내가 그것을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견뎌낼 수 있을지 확신이 안 서고. 전자에서 자리잡는다면(그것이 현재 내가 처한 신체적 한계와 부합할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지만) 삶에 처한 여러 문제가 한번에 해결될 수 있다.

(내 학부전공은 돈을 많이 버는 데에 도움이 될만한 전공이다. 그리고 그 돈을 많이 벎에 최종적으로 진입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들을 해대는 공간. 하지만, 물질적 필요만 '충분히' 만족시키고자 한다면 길은 얼마든지 있었는지를 이제서야 알았다. 사실 난 그런 돈벌이와 관련된 문제에서 세상의 평판 따위에 신경쓸 단계는 이미 예전에 지났다.-아마도, 그정도는 내가 성장한거겠지. 어찌 판단하든 내가 나 스스로만 가지고 판단하리. 10여년전에 했던 비주체적 선택-사회적으로는 대단히 보편적이었던-이 얼마나 내 삶에 비극적이었는지.)

하지만 그 말은 참 위로가 되었다. "그 나이대면 아직 ㅇㅇ대생으로는 늦은게 아니에요. 너무 조급하게 굴때가 아니에요." 그자가 나와 같은 학부 전공이었다는 사실이 그 말에 강한 설득력을 더해주었다. 학교를 떠난 이후 나는 처음으로 위로받았다. 

Posted by 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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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2013. 8.)

영화 2013. 8. 3. 23:11



1. 틸다스윈튼만 눈에 띄었다. 누구인지 못알아볼 정도였다. 영화 포스터를 처음봤을때도 누구인지 못알아보다가 써져있는 이름을 보고 나서야 누구인지 알았다. 이 사람이 '케빈에 대하여'의 그 배우인지 어떻게 알겠어.

2. 구성은 생각보다 엉성. 충분히 더 살릴만한 요소가 많아 보일정도로 세계관 자체는 괜찮았는데.                         그런데 이 영화를 자본주의에 대한 영화로 보는건 뭔가 오바스럽다. 그 어느 시스템이나 다 이러할텐데.

3. 이것저것 생각해볼게 많겠지만(매트릭스 비스무리하기도 하고), 사람들은 다들 자기 목숨을 인질로 잡혀 기꺼이 세상이 살라는대로 살아가는 법. 그럴경우 삶은 시지프스가 되기 쉽다. 

4. 좀 더 치밀한 영화였다면 여기다 뭔가 더 길게 썼을듯.

(5. 포스터가 콩을 까고 있다. ㅋㄲㅈ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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