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의 누(2005)

영화 2013. 8. 12. 18:04



  섬은 뭍과 격리된 하나의 정치공동체로서 기능하고 있다. 그리고 이 섬이라는 정치공동체는 19세기 조선이라는 정치공동체를 상징한다. 19세기 조선 또한 간헐적인 교류를 제외하고는 섬과 같이 외부와 격리되어 있었다. 정조 사후에 이런 고립된 조선의 정치권력은 노론에 의해 독점되었는데, 이러한 반대항이 존재하지 않는 일원적인 지배는 그 체제 하에서 피지배자들의 불만을 사게 되었는바, 그러한 피지배자들의 불만을 가리기 위해, 체제를 위협하는 다른 위협적인, 그러나 관리할 수 있는 반대항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그 반대항은 고립된 조선의 현실에서는 그 내부에서 찾아낼 수 밖에 없었다.(이는 한국현대사에서의 '빨갱이' 담론이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반대항으로 설정된 것 중의 하나가 '서학'이었으며 영화에서 보여주듯 현체제를 위협하는 반대항으로서의 서학의 존재가 필요한 것이었을 뿐 '서학쟁이'로 설정된 자가 정말로 서학쟁이인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이를 통해 조선사회는 스스로의 체제유지를 위해 끝없이 희생양을 요구하고 있었음이 보여지고 있다.(정치체제 내 모순을 드러내려는 자는 오히려 광자로 묘사된다. 그러한 자는 그 체제 내에서는 '광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과연 '그가 광인인가, 아니면 그를 광인으로 취급하는 섬주민들이 광인인가?'라는 아이러니컬한 모습 또한 보여주는데, 이러한 광경은 영화의 결말 부분에서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조선사회는 무고한 자들을 희생시키면서 문제해결능력의 마비를 또한 보여준다.(그리고 관리할 수 없는 강력한 반대항이 나타났을 때 비로소 조선사회는 체제의 유지에 봉사하는 동요가아닌 진정한 의미의, 체제를 넘어서는 시도로서의 동요를 보이게 된다.)

한편, 상인계급의 성장은 조선사회의 또 하나의 동요 요소였는데 이들은 영화에서 묘사되듯 실질적으로 피지배계급을 장악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그러나 이 계급의 지배는 조선의 사회질서에서 용납되지 못하고 결국 제거된다. 결국 정치권력의 독점으로 인한 부패와 혼란은 가중되어간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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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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