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경필(송강호)는 두 가지 측면에서 살아남았다. 하나는 대치와 총격이라는 극단적 상황에서 살아남은 점이다. 이 사건 와중에서도 오경필은 네 명의 병사 중 극한상황에서 이데올로기에 포섭되어 행동하는 다른 세 명과 달리 끝까지 이데올로기로부터 분리된 태도를 취했다. 오경필은 오랜 외국에서의 경험을 통해 북한체제의 허실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고, 이는 미제와 초코파이를 특히 좋아하는 그의 태도에서도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그렇기에 그는 서로에게 총을 쏘는 식으로 이데올로기대로 행동하지 않았고 그 사태를 오히려 침착하고 대범하게 수습할 수 있었다. 그는 이데올로기를 이데올로기로서(허상으로서) 포착할 수 있었다.

또 하나의 측면은 그가 끝까지 이데올로기 체제에 자신이 그로부터 분리되어 있음을 들키지 않음으로서 살아남았다는 점이다. 이것은 네명의 우정을 들키지 않으려고 사태를 수습하려 가장 애쓰는 인물이 오경필이라는 점에서 나타난다. 그는 사건 뒤의 이수혁과의 대질에서도 사태수습을 위해 일부러 소동을 일으킨다. 그는 그러한 우정을 남북의 이데올로기 체제가 용납하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데올로기는 허상이지만,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신이 자유롭다는 사실이 공개적으로 드러날 경우 사회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그것이 가진 강력한 힘을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결국 오경필은 이데올로기를 잘 알고 있었기에 살아남은 것이다.(이수혁은 이데올로기를 어렴풋이는 의심하지만 결국 극한상황에서는 이데올로기대로 행동했다는 점에서 오경필과 대비되고, 그래서 죄책감에 자살을 택한다.) 그는 이데올로기의 허상을 알았기에 총을 쏘지 않았고, 이데올로기의 힘을 알고 있어서 사건을 조작하였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이수혁과 남성식을 탈출시키면서 사건 조작을 끝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이수혁과 남성식에 대해 배신감을 느끼지 않았다는 점에도 기인하는데, 이는 소피(이영애)와의 마지막 대화에서 자신도 이수혁과 같은 입장이었다면 마찬가지로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그는 극한상황에서 결국 작동하게 되는 다른 측면의 이데올로기의 힘 또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영화는 이데올로기의 강력한 힘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 강력한 이데올로기가 사실은 허상에 기인하고 있다는 아이러니한 점을 보여주고 있다.

(2007.)

2. 

허상을 두고 싸우는 것의 무용함을, 그 유해함을 깨달은 자들. 광장의 이명준과 이 영화의 소피의 아버지. 나는 이데올로기에 심취해 있는 이들에게 간혹 묻고 싶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것이 그토록 유의미한가? 그것이 자네의 삶에, 죽음에 맞닿아봐도 그러한가?

이 나라는 수백년 전의 세상과 별로 달라진게 없다. 쓸데없는 것으로 싸우고 논쟁하며 삶을, 죽음을 던진다.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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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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