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 정권의 성립 이전에 나타나는 도덕은 가족이나 돈거래와 같은 사적 공간의 도덕이었다. 그 도덕은 국가로부터 직접 연원하지 않는 사적 부문의 자연적 공동체의 것이었다. 그러나 공산당 이후에 사적공간의 도덕은 공용식당에서 아들에 대한 반동이라는 비판이나, 주인공의 아들이 철이 더 있다고 말하는 것에 대한 칭찬(특히, 이것은 가족보다 공적 대의를 더 중시하는 태도였다.)에서 알 수 있듯이 점차 국가 공동체 차원의 공적인 것으로 그 성질이 변화한다. 사적 부문은 최소한으로 축소하고 공적 부문이 전분야를 전면적으로 총괄한다. 이러한 변화에서 공적 도덕의 전 부문에 대한 총괄적 지배는 결혼식이나 예술에서도 등장하는 마오의 초상에서 드러나듯이 마침내 완전해지는 듯이 보인다.(이에 비해 사적 예술인 그림자 놀이는 결국 불태워진다.)
그러나 주인공들은 그러한 공적 부문의 확장 속에서 그에 대한 진심을 드러내지 않는다.(심지어 이것은 관객에게마저도 그러하다. 그들은 공적부문에 대한 속내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공적부문에 대한 그들의 반응은 살아남기 위한 허위적인 언행이다. 그들의 진심이 드러나고 삶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공적공간에서가 아니라 전면적인 공적공간의 포섭으로부터 끝까지 사적인 것으로 남아있는 가족이라는 공간에서이다.(도박 근절이라는 남자주인공의 변화와 부자가 되겠다는 목표는 가족을 매개로 한 것이다.) 공적 부문의 전면화 속에서도 주인공들의 삶을 지탱시켜주는 것은 가족이라는 사적 부문이라는 점에서 가시적 공적 영역은 매우 확대되어있으나 역설적이게도, 사람들은 그로부터 소외되어 있음이 드러난다.(이 소외는 공적부문에 투신했던 위원장과 지역책임자들이 결국 숙청의 대상으로서 조사받는 것에서도 나타난다. 결국 모두 공적 영역에서 소외되어 있다.) 이를 넘어서 공적 영역은 주인공들의 두 아이를 죽임으로써 사적 영역의 행복을 해치는 것으로서 나타나기까지 한다. 그리고 이 점에서 공적부문으로의 통일적 일원화 프로젝트는 실패하고 있다.
이러한 희생을 겪은 주인공들은 결말 부분에서 가족을 기억하는 손자를 칭찬하고(이것은 이웃들의 아들에 대한 칭찬과는 다른, 가치의 전도를 보여준다.), 병아리를 그림자 놀이의 상자에서 키우는 것에서 도덕과 삶이 다시 변용-특히 가족적 가치에로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다.(이것은 중국의 90년대부터의 사적부문에 대한 재발견을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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