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탄생(2006)

영화 2013. 8. 12. 18:14

가족과 혈연이라는 법적, 관습적인 경계를 넘어선 새로운 개념의 가족을 대안적 공동체로 제시하고 있다. 기존의 공동체는 (광의의)에로스의 경계가 뚜렷하게 정해져있다. 그러나 대안적인 공동체에서의 에로스는 그러한 경계에 얽매임이 없다. 가족이나 혈연의 에로스가 따로 존재하고 그것의 확장으로써 공동체가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족, 혈연의 에로스의 경계가 무화되고 에로스가 그와 무관하게 됨으로써(문소리가 엄태웅을 쫓아내는 결말은 가족의 개념에 혈연이라는 관습적인 경계는 새로운 대안적 공동체를 의미하는 새 개념의 가족의 탄생에 불필요한 것임을 드러낸다.) 에로스가 한정지워짐이 없이 보다 자연스럽게 널리 확장될 수 있게 된다. 어떠한 경계가 설정된 관계에만 에로스가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개방시키는 것이 새로운 공동체의 특징으로 제시되고 있다.(기존 사회의 가족, 혈연의 관습적인 개념은 오히려 에로스의 개방을 가로막는 걸림돌의 역할을 하고 있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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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이라는 철저히 공식적으로 성리학적인 사회의 외부가 보이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 볼 수 있다. 연경이나 저승으로 대표되는 '非조선', '비성리학적 사회'가 등장하는데, 그곳은 숙부인의 '그곳(저승)에서라면 우리가 부부라한들 뭐라 할 사람이 없겠지요.'라든가 연경으로 꼭 가고싶다는 말에서 잘 드러난다. 이들 '비조선'은 성리학적 도덕에 구애받지 않고 남녀간의 욕망대로 사랑을 이루어 살아갈 수 있는 공간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이미 조선 사회 내부에서도 '비조선'이 나타나고 있다. 조씨부인이나 조원의 태도에 드러나듯이 이제 더 이상 조선사회내 사람들은 성리학이 상정하는 도덕적 인간을 위한 자기수양에 힘쓰지 않으며 오히려 그러한 공식적 질서 하에서 나름대로 스스로의 더 본연적 욕망-이를 테면 사랑-에 더 충실한 삶을 살고자 한다. 이제 성리학적인 도덕이나 예법이 아닌 인간의 본연의 욕망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더 이상 사람들은 성리학적 도덕에는 관심이 없으며 오히려 욕망에 충실한 삶을 가장 좋은 삶으로 평가한다. 이제 사람들은 마음껏 욕정을 품고 마음껏 사랑하며 마음껏 질투한다. 그리고 숙부인의 말에서 드러나듯이 이러한 태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조선 사회 내에서의 비공식적인이고 은밀한 욕망의 삶을 누리는 것에서 이제는 이러한 욕망의 삶이 공식적으로도 용인되는 보다 더 자유로운 욕망이 가능한 공간으로서 저승과 연경을 꿈군다.(연경과 저승은 욕망이 충만한 하나의 이상적 사회로서 상정되는 것이다.) 이렇게 다른 사회-비조선을 꿈꾼다는 것 자체가 이미 충분히 조선이라는 정치공동체에 전복적인 움직임의 시작이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결말 부분에서 숙부인의 내세로의 선택과 조씨부인의 연경행을 암시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두 여자주인공은 이미 그러한 조선 밖의 사회를 선택하고 그곳을 지향하는 전복적 행위를 실천하는 단계로까지 나아가고 있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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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경필(송강호)는 두 가지 측면에서 살아남았다. 하나는 대치와 총격이라는 극단적 상황에서 살아남은 점이다. 이 사건 와중에서도 오경필은 네 명의 병사 중 극한상황에서 이데올로기에 포섭되어 행동하는 다른 세 명과 달리 끝까지 이데올로기로부터 분리된 태도를 취했다. 오경필은 오랜 외국에서의 경험을 통해 북한체제의 허실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고, 이는 미제와 초코파이를 특히 좋아하는 그의 태도에서도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그렇기에 그는 서로에게 총을 쏘는 식으로 이데올로기대로 행동하지 않았고 그 사태를 오히려 침착하고 대범하게 수습할 수 있었다. 그는 이데올로기를 이데올로기로서(허상으로서) 포착할 수 있었다.

또 하나의 측면은 그가 끝까지 이데올로기 체제에 자신이 그로부터 분리되어 있음을 들키지 않음으로서 살아남았다는 점이다. 이것은 네명의 우정을 들키지 않으려고 사태를 수습하려 가장 애쓰는 인물이 오경필이라는 점에서 나타난다. 그는 사건 뒤의 이수혁과의 대질에서도 사태수습을 위해 일부러 소동을 일으킨다. 그는 그러한 우정을 남북의 이데올로기 체제가 용납하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데올로기는 허상이지만,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신이 자유롭다는 사실이 공개적으로 드러날 경우 사회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그것이 가진 강력한 힘을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결국 오경필은 이데올로기를 잘 알고 있었기에 살아남은 것이다.(이수혁은 이데올로기를 어렴풋이는 의심하지만 결국 극한상황에서는 이데올로기대로 행동했다는 점에서 오경필과 대비되고, 그래서 죄책감에 자살을 택한다.) 그는 이데올로기의 허상을 알았기에 총을 쏘지 않았고, 이데올로기의 힘을 알고 있어서 사건을 조작하였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이수혁과 남성식을 탈출시키면서 사건 조작을 끝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이수혁과 남성식에 대해 배신감을 느끼지 않았다는 점에도 기인하는데, 이는 소피(이영애)와의 마지막 대화에서 자신도 이수혁과 같은 입장이었다면 마찬가지로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그는 극한상황에서 결국 작동하게 되는 다른 측면의 이데올로기의 힘 또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영화는 이데올로기의 강력한 힘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 강력한 이데올로기가 사실은 허상에 기인하고 있다는 아이러니한 점을 보여주고 있다.

(2007.)

2. 

허상을 두고 싸우는 것의 무용함을, 그 유해함을 깨달은 자들. 광장의 이명준과 이 영화의 소피의 아버지. 나는 이데올로기에 심취해 있는 이들에게 간혹 묻고 싶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것이 그토록 유의미한가? 그것이 자네의 삶에, 죽음에 맞닿아봐도 그러한가?

이 나라는 수백년 전의 세상과 별로 달라진게 없다. 쓸데없는 것으로 싸우고 논쟁하며 삶을, 죽음을 던진다.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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