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글을 뭘 쓸까 생각 중이다.

 

홍콩의 화양연화는 원래의 구상대로면 5편으로 끝날 거 같고.

맨 처음의 계획으로는 꽤 긴 글 하나로 쓸 생각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위대한 텍스트는 무한히 해석이 가능하다.

아무 해석이나 가능하다는 뜻이 아니라, 타당한 해석만으로도 그 텍스트에 대한 수많은 글들이 나올 수 있다.

익히 들어본, 그러나 아무도 쉬이 읽지는 않는 불멸의 고전들을 떠올리면 될거다. 글 하나, 책 하나가 얼마나 무수한 다른 글들을 낳았는가.

이런 기준에서라면 나는 화양연화라는 영화도 위대한 텍스트라 할만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위대한 영화가 그러하듯이.

화양연화로 글을 쓰라고 하면, 백편이든 천편이든 쓸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브루스 웨인의 다크나이트'다. 다크나이트 시리즈 전체를 배트맨이 아닌, 인간이자 시민인 브루스 웨인의 관점에서 총체적으로 재구성하는 글이 될 것 같다.

 

다른 하나는 '제이슨 본' 시리즈를 다룰까 한다. 본 아이덴티티, 본 슈프리머시, 본 얼티메이텀 3부작. 부가적으로는 최근작인 '제이슨 본'까지 언급하려 한다. 

이건 7~8년 전 쯤에 써놓은게 있다. 다만 그 당시의 나로서는 그렇게 현학적으로밖에 글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그걸 그대로 날 것으로 올리기엔 너무 빡센 글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 초안도 있으니, 쉽게 풀어서 다시 여러 편으로 나누어 써볼 수 있을 거다. 

 

그런데, 둘 중 어느 걸 쓰든 간에 글 자체가 만만하진 않을거 같다. 어찌되었거나 인문/철학 얘기랑 같이 하게 될테니까.

 

홍콩의 화양연화 번외편은 어떻게 하면 더 쉽고 재밌게 찰지게 쓸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나온 글이다. 반응이 좋다면, 다크나이트를 쓰든 제이슨 본을 쓰든 그런식으로 어떻게든 더 웃기고 찰지게 쓰려 할 것 같다. 

Posted by 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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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티오

짧은글 2021. 1. 22. 18:53

정치사상(또는 정치철학)은 철학이나 법학과 같은 '사이언스'에 속하는 분과가 아니라 '레토릭'에 속하는 분과라는 점이다. 오늘날 정치적인 글을 쓰는 사람들은 독자들의 합리적 동의를 얻기 위해 합리적인 주장들을 고안해내려는 목적에 맞춰 저작활동을 하고 논문을 작성한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나 다른 공화주의 사상가들은 정치사상을 '말하는 기술'에 속하는 활동으로 이해했고, 그렇게 실천했다. 즉 그들은 단지 독자들의 합리적, 이성적 동의만을 얻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열정까지 움직여냄으로써 어떤 정치적 아이디어에 대해 그 독자들에게 찬반을 설득하겠다는 목적을 가지고서 저술활동을 했던 것이다. 그들은 이성을 '말하는 기술'로써 보강하고자, 즉 '라치오ratio'를 '오라치오oratio'로써 보강하고자 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들은 모범사례, 비유, 실제 이야기, 격정적 권고 등 고전 레토릭의 모든 수단들을 즐겨 동원했다.


-모리치오 비롤리, <공화주의> 중-

Posted by 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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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린 사람

                                             기형도

 

사회자가 외쳤다

여기 일생 동안 이웃을 위해 산 분이 계시다

이웃의 슬픔은 이분의 슬픔이었고

이분의 슬픔은 이글거리는 빛이었다

사회자는 하늘을 걸고 맹세했다

이분은 자신을 위해 푸성귀 하나 심지 않았다

눈물 한 방울도 자신을 위해 흘리지 않았다

사회자는 흐느꼈다

보라, 이분은 당신들을 위해 청춘을 버렸다

당신들을 위해 죽을 수도 있다

그분은 일어서서 흐느끼는 사회자를 제지했다

군중들은 일제히 그분에게 박수를 쳤다

사내들 울먹였고 감동한 여인들 실신했다

그때 누군가 그분에게 물었다, 당신은 신인가

그분은 목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당신은 유령인가, 목소리가 물었다

 미치광이를 끌어내, 사회자가 소리쳤다

사내들은 달려갔고 분노한 여인들은 날뛰었다

그분은 성난 사회자를 제지했다

군중들은 일제히 그분에게 박수를 쳤다

사내들은 울먹였고 감동한 여인들은 실신했다

그분의 답변은 군중들의 아우성 때문에 들리지 않았다

Posted by 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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